조선을 구한 전투 – 한산도 대첩

조선을 구한 전투 - 한산도 대첩
조선을 구한 전투 - 한산도 대첩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승리한 전투가 여러 번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를 꼽으라고 하면 1592년 7월 8일 (음력)에 있었던 한산도 대첩이라 할 것이다. (‘한산대첩’ 재조명…거북선 · 학익진 얼마나 대단했을까)

이 전투에서 왜군이 참패함에 따라 왜군의 진격이 해상과 육상에서 저지되고, 조선군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또한 왜군에 대한 승리로 인해 조선군과 조선 민중들 사이에 왜군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졌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말해 한산도 대첩은 전쟁의 향방을 결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는 아직 명나라의 원군이 오기 전이었다. 왜군이 4월 13일 (음력) 침공을 개시한 이후, 조선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되고, 4월 28일 (음력)에는 신립 장군이 이끄는 최정예 부대가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 선조와 조정은 허겁지겁 북으로 피난을 했고, 조선은 왜군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듯했다.

이런 결정적인 시점에서,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잇단 패전으로 패배감과 좌절에 빠져있던 조선 민중에 큰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이후 전국 각자에서 의병 활동이 불같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조선 수군이 남해의 제해권을 확보하여, 왜군의 보급선에 타격을 가했다. 이로써 수군을 이용해 서해를 돌아 진격하려던 왜군의 계획은 헛되이 사라졌다.

한산도 대첩에서 조선 수군은 함선의 피해없이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이라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벼운 피해만을 입었다. 이에 비해 왜군은 대장선을 비롯해 60여 척이 침몰하고 약 8천 여 명이 현장에서 전사했다.

그런데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후 왜 수군은 조선 수군에 참패를 거듭해서, 그야말로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조선 수군의 놀라운 전투력을 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후 해전 금지령을 내렸고, 임진왜란은 마침내 조선의 승리로 끝났다.

한산도 대첩의 놀라운 승전이 오로지 이순신 장군 한 사람의 놀라운 리더쉽으로 이루어진 것은 너무나 믿기 어려운 기적이다. 임진왜란의 시기에 이순신 장군이 마침 전라 좌수영을 맡고 있었다는 것은, 조선의 행운이었으며 나아가 이 민족의 행운이었다. 참 대단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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