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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영웅 레이건을 추모하며

레이건대통령
레이건대통령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씨가 현직에 있을 때, 그의 별명은 “테프론 대통령” 이었다. 이 당시 주부들이 쓰는 프라이팬에 “테프론”이라는 신제품이 나왔다. 이 제품의 광고는 프라이팬에 음식이 달라붙지 않아 요리나 설겆이 할 때 편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레이건 씨가 “테프론”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아무리 야당이나 언론에서 레이건을 공격해도 그의 인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비난이 그에게 달라붙지 않고 금새 떨어져 버린 다는 뜻인데, 말하자면 국민들이 그에게 근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1981년 레이건 씨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와 그의 아내 낸시 레이건 씨는 이미 70대 노인이었다. 하버드와 예일대 출신들이 가득했던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그는 그저 시골 대학교 학사 졸업장 뿐이었다. 미국의 정치계에서 천시하는 영화 배우 출신, 그것도 B급 영화 배우 출신이라는 것도 특이했다. 좌파가 잡고 있던 미국 언론은 그가 무식하며, 점성술 따위를 믿고, 경험이 없다는 식의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는 별로 움츠러들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임기초 항공 관제사 파업이 일어나자, 그는 아주 강경한 입장을 지켜 결국 노조를 굴복시켰다. 그는 필요하면 그레나다를 침공하고, 리비아를 폭격했다. 그는 냉전의 한가운데서 베를린 장벽앞에서 “고르바초프씨,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장벽을 없애시오!”라고 일갈하여 자유 진영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레이건 정권이 전략방위구상 (SDI)를 내놓자, 진보 세력들과 모든 미디어들이 총궐기하여 이를 비난하였지만, 그는 계획을 밀어붙였고, 결국 미국의 우주 전략에 두려움을 느낀 소련이 군축에 합의하도록 만들었다.

레이건 씨는 공산국과의 관계에 있어 미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신봉하던 데탕트 (평화공존론)을 무시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는 악한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에게 햇볕 정책을 쓰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공산 진영에 대해 강경 일변도 정책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과 세계의 지식인들은  레이건 정권의 강경 정책이 위험한 카우보이식 정책이며, 소련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처럼 그의 정책이 무식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조롱하던 지식인들은 1989년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졌을 때, 비로서 레이건 정권의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레이건 씨와 마가렛 대처 씨가 전성기를 누리던 1980년대는 이제 갔다. 미국에서 레이건씨는 뛰어난 유머와 인품을 갖추었던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아! 그렇다. 어느 새영웅들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그저 그런 꼬마들이 엄청난 권력을 쥐고 위험한 장난을 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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