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여왕 쥴리 앤드류스 씨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 시작하여, 뉴욕 브로드웨이를 거쳐 마침내 헐리우드에서 무지컬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마이 페어 레이디” (1956)이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뮤지컬 영화에 나왔지만, 그녀의 영화 중에서 본격적으로 히트한 작품은 “메리 포핀스” (1964)이다. 1964년 메리 포핀스가 개봉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은 쥴리 앤드류스씨의 뛰어난 능력을 알게 되었다.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는 영국적 코메디가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는 고집붙통이고 지나치게 형식적인 영국의 주류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소로 가득하다. 비록 영화의 설정은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지만, 사실 영화가 만들어진 때인 1960년대의 영국도 그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영국이 낳은 두 명의 천재적인 엔터테이너인 쥴리 앤드류스와 딕 밴 다이크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그 외 많은 조연들의 연기도 대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64년 당시의 기술로는 거의 구현하기 어려웠을 특수 효과가 관객들에게 엄청난 놀라움을 주었다.
그저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이 영화에는 사실 수많은 사회 문제가 숨어 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는 뱅크스씨 부인 (여성 참정권 ), 굴뚝 청소 노동을 하는 어린이들 (아동 노동), 귀족들의 여우 사냥 (동물 학대), 새모이를 파는 할머니 (노인 빈곤), 그 밖에도 여러 이야기들이 관객들이 발견하기만 기다리는 듯하다. 유쾌한 코메디 영화의 곳곳에는 영국 사회 각 계층의 고통과 슬픔이 숨어 있는 것이다.
1964년 메리 포핀스가 개봉 된 후 이 영화는 흥행도 대성공이었을 뿐만 아니라, 1965년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비롯해 5개나 수상하였다. 메리 포핀스가 나온 지 60년이 지났어도, 그 다음 해에 나온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외한다면, 가족 영화 분야에서 이를 능가할 영화가 아직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메리 포핀스가 얼마나 시대를 앞선 영화였는지를 말해준다. 헐리우드는 2018년에 “메리 포핀스” 를 새로 만들어 내놓았지만,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실패했다. 어쩌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상력은 1964년 이후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것 아닐까?
이 영화에서 처럼 실제에서도 누구나 “S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주문을 외면 금방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즐거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개봉 당시에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즐거웠던 순간은 잠시였고, 극장을 나오면 1964년의 어두운 현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