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후반이 되자 한국 전쟁의 초기에 승승장구하던 북한군이 연전연패하면서 , 북한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김일성은 패전의 책임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측에 돌렸다.
그 해 11월 7일 소련 대사관에서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당신이 말한 빨치산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전쟁이 시작되면 남조선에서 백성들이 다 일어난다고 그랬는데 어디로 갔나? 작년 4월 우리가 함께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 대원수를 만났을 때 당신 입으로 뭐라고 했는가? 우리 인민군이 산보하는 기분으로 서울까지만 밀고 내려가면 남로당 지하당원 수백만 명이 폭동을 일으켜 남한을 삼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보고하지 않았는가?” 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사실 해방 공간에서 무려 백만 당원을 자랑하던 남로당은 정작 한국 전쟁 중에 남한에서 단 한번의 반란이나 민중 폭동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남로당은 해방 정국에서 수 많은 노동 쟁의와 파업을 일으켜 남한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1948년에는 제주도와 여수 순천 지역에서 무장 반란을 일으키거나 무력 투쟁을 이끌었다. 남로당 세력은 노조를 기반으로 사회 각 부분에 강력한 조직을 구축했으며, 심지어 경찰과 군대에도 침투하여 상당한 조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세 등등했던 남로당은 정작 그들이 실력을 보여주어야 했던 한국 전쟁 중에는 너무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만약 남로당의 잔당들이 대한민국의 군대와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 전체에 암약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한국 내부에서 테러와 배반 행위를 했다면, 아마 전쟁 초기 위기에 빠진 한국 정부는 부산 교두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 공간에서 그 많던 남로당 당원들과 심파 (동조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전쟁중 남로당의 폭동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건국이후 남한에서 강력하게 전개되었던 공산당 숙청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 전쟁 동안 남한에서 좌익들의 반란이나 사보타지가 없었던 것이 일찌감치 한국 정부가 사회 전체에서 좌익 숙청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덕일까? 만약 그렇다면, 전쟁전에 국군내에서 공산당 색출 작업을 지휘한 김창룡 씨같은 인물을 포함해, 잔인한 좌익 숙청으로 악명을 남긴 많은 인물들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전쟁중 남로당의 폭동이 없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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