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계갑대기근으로 돌아 보는 지금의 한국

계갑대기근으로 돌아 보는 지금의 한국

1594년 1월은 조선에게는 끔찍한 “계갑 대기근”이 한창인 때였다. 이미 임진왜란이 2년 이상 계속되고 있었기에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왜군의 점령지에서는 농민들이 피난을 가서 농사를 짓지 못했을 뿐더러, 그나마 있던 곡식도 왜군과 명군의 강탈로 인해 남은 게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때 사망자의 대부분은 전쟁 때문이 아니라 기아 때문이었다고 한다. 침략군이던 왜군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패해 본국에서 군량미를 가져올 수가 없었으므로, 조선에서 마구잡이로 약탈을 했고, 구원병으로 온 명군도 조선에서 식량 확보가 여의치 않자 약탈을 자행했다.

물론 여기에는 전세계적인 기후 문제도 있었다. 중국과 유럽에는 이 시기에 이상 기후로 농사를 망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전쟁과 굶주림… 그래 저래 당하는 것은 힘없는 조선의 국민들이었다. 굶주림에 거의 정신 줄을 놓은 백성들은 인육을 먹는 지경에 내몰렸다. 1594년 1월 17일 ‘선조 실록’은  “길에 쓰러져 죽은 시신은 붙어 있는 살점이 없고, 사람 고기를 먹으면서도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한 것은 왜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일본에 있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조선으로 건너온 15만 명의 왜군 중에 삼분의 일인 5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으로 전쟁이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 질병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어쩌면 임진왜란의 원인도 이상기후로 일본에 식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계갑대기근이야 비록 끔찍하지만 500여 년 전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나라는 과연 굶주림 문제를 해결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가난에 몰려 일가족이 자살하는 슬픈 소식이 지금도 자주 보도되고 있다. 국민들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어도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는 것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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