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부터 7개월 동안 계속된 과달카날 전투에서 1943년 2월 9일 미군이 마침내 승리했다. 과달카날 전투는 일본군이 지상전에서 미군보다 더 잘한다는 일본의 호언장담을 산산히 부셔 버리고, 미군의 놀라운 전투 수행 능력을 보여준 첫 전투였다.
과달타날은 남태평양의 솔로몬 군도에 있는 섬이다. 일본군은 진주만 기습 이후 이 섬에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한 편으로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이 섬이 일분군의 거점이 되면 호주로 가는 길목이 위협받게 되어 호주와 뉴질랜드에게 큰 위협이 될 판이었다.
1942년 8월 7일 이를 깨달은 미 해병 1사단 병력 약 1만 5천여 명이 과달카날에 상륙했다. 초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3일 째가 되자 미군은 약간의 일본군 저항을 분쇄하고 비행장을 포함한 중요 거점을 점령했다.
하지만 9일이 되자 일본군은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반격을 개시했다.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은 미 해군 함선들이 격침되거나 도주하자 이미 상륙한 해병 병사들은 섬에 고립되어 심각한 물자 부족 문제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밤낮없이 공격하는 대규모의 일본군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멍청한 일본군 지휘부가 과달카날의 미군 상황을 오판하여 병력의 축차투입을 계속하는 바람에 일본군의 결사적 공격도 여러 번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여러 번에 걸친 공격이 실패하자 과달카날의 일본군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시달리며 점차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반대로 미군은 점점 병력을 증강하여, 1월 중순이 되자 미군의 숫자는 5만, 일본군은 2만으로 숫자가 역전되었다.
결국 일본군 지휘부는 과달카날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2월 7일 구축함을 이용해 철수했다. 일본군의 교묘한 작전 탓에 미군은 2월 9일이 되어야 일본군의 철수 사실을 알아챘다.
과달카날 전투는 개전이후 미군이 지상전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게다가 이 전투는 일본군 지휘부의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 일본군이 미군과 소모전을 치를 경우, 질 수 밖에 없는 데도 일본군은 과달타날 전투에서 무식한 만세 돌격을 반복하여 많은 병력을 잃었다. 게다가 이 전투에서 잃은 선박과 항공기, 조종사들의 손실은 이후 일본군의 공격 방향에 큰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자기의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이든 공산 체제이든, 오늘을 살아가는 아시아 인들은 과달카날의 정글에서 죽어 간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빚이 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일본군의 남진을 막지 못했다면, 아마도 1945년의 승리와 해방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