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세이난 전쟁과 조선 조정

세이난 전쟁과 조선 조정

할리우드의 톱 스타인 탐 크루즈가 주연을 해서 꽤 흥행에 성공했던 2003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The Last Samurai)”는 실제로 있었던 세이난 전쟁(西南戦争)을 다룬 것이다.

1868년 부터 시작된 보신 전쟁 (戊辰戦争)이 막부와 신정부 사이의 전쟁이었다면, 1877년 2월의 세이난 전쟁은 신정부의 기둥이었던 사쓰마 번이 중앙 정부에 대항하여 싸운 전쟁으로 일본의 마지막 내전이었다.

이른바 명치 유신을 위해 사쓰마 번은 죠오슈, 도사와 힘을 합쳐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정부를 새웠다. 하지만 사쓰마 번의 지도층이 바란 것은 민주 정부가 아니라, 300여 년전 전국 시대 때 승리한 측이 그랬듯이 더 많은 땅을 갖게 되고 더 많은 권력을 쥐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 정부가 각 번의 자율권을 빼앗고 사무라이 계급을 없애는 중앙 집권의 근대 국가식 개혁을 추진하자, 사쓰마 번은 뒤늦게 신정부의 성격을 알게 되었다. 분격한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은 다시 한 번 반란을 통해 신정부를 무너뜨리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세우려고 1877년 2월 봉기했다.

하지만 신정부는 생각보다 강했다. 그리고 사무라이들이 휘두르던 칼보다 징집된 평민 병사들이 쏘는 총이 더 효과가 있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던 용맹한 사쓰마의 무사들은 기관총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잡병으로 업신여겨졌던 군인들이 무사들에게 이겼다.

봉건 사족 체제가 허무하게 무너진 세이난 전쟁을 끝으로 일본은 근대화의 길로 매진한다. 그리고 세이난 전쟁 이후 내부의 모든 장애물을 척결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 침략의 길에 나서게 된다.

한편 1877년에 조선은 고종의 즉위 14년 째를 맞았다. 이미 강화도 조약 (1876)으로 쇄국 정책을 버리고,  부산항을 일본에 개항했지만 조선은 아직도 긴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웃 일본이 함포와 기관총을 동원한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현대적인 군비 증강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막고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그저 입으로만 양이와 쇄국을 외치던 무능한 이념주의자들이 판치던 조선은 이렇게 기회를 놓쳤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