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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군사 쿠데타와 시대 정신

지금부터 약 61년 전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가 일어 났다.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는 무능하고 혼란스럽던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군 엘리트들의 반란이었다. 돌이켜보면 세계적으로 1960년대는 가히 군부 쿠데타의 전성기였다. 격동의 1960년대 내내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에서 군사 쿠데타가 잇달았다.

마치 1919년 일어난 3.1 운동이, 그 후 중국의 5.4 운동과 인도의 반영 평화 시위와 같이 전세계에 비폭력 평화 시위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처럼, 1961년 한국에서 시작된 군사 쿠데타는 세계 곳곳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증오하는 정치 집단에서조차, 재임기간 동안 그의 경제적 업적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청렴했고, 근면했고 또 현명했다. 물론 그는 독재자였으며,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른바 유신 체제를 만들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지금과 달랐으므로, 지금의 잣대만으로 그 시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일들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 것은 마치 구약의 하나님을 지금 윤리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의 사회 상황을 잘 말해주는 여러 팩트들이 있다. 5월 16일,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당시 대통령이던 윤보선 씨는 오히려 쿠데타에 동조하는 듯한 행태를 보여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내각 책임제의 총리로서 사실상 국정을 책임졌던 장면 씨는, 쿠데타 소식을 듣자 사태 수습은커녕 수녀원으로 도주하여 자신의 안전만을 챙겼다.

쿠데타에 참여한 소수의 병력이 국정 전체를 장악할 동안, 군부의 다른 병력은 이를 방관하거나 찬성하여, 군부내 쿠데타 반대 행동은 사실상 전혀 없었다. 갑작스러운 쿠데타에 당황한 주한 미군 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이 수 천 명에 불과한 쿠데타군의 규모를 언급하면서, 필요하다면 휘하 병력을 동원해 역쿠데타를 지원하겠다고 종용했지만, 민주당 정부나 군부 지휘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쿠데타를 반대한다는 집단적 의사 표명이나 시위가 없었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민주당 정권 내내 극렬한 시위를 계속했지만, 이들도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1961년의 5.16 군사 쿠데타는 어쩌면 한 줌도 안되던 민주당 정치 브로커들을 제외하면 전 국민이 동의하거나 묵인한 것이 아닌가? 하루 빨리 민주당 정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 시대에는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 정신 (Zeitgeist)이었을까? 만약 군사 쿠데타가 시대 정신에 역행한 것이라면, 국민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쿠데타를 지지하거나 묵인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당시 한국 민중이 어리석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일반인들 뿐만이 아니다. 나중에야 박정희 정권에 맞서 투쟁했지만, 사상계로 유명한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상당한 지식인들도 군사 쿠데타 초기에는 쿠데타를 지지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대통령 윤보선 씨는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다. “올 것이 왔구먼” 이 짧은 말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보던 5.16 쿠데타의 성격을 잘 정리한 말이다. 어쩌면 그도 마음속으로 그 당시의 시대 정신을 잘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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