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캄캄한 밤에도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 “그 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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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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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춘망

두보의 춘망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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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역적에게 망해도 산과 강물은 여전하고 도시에 봄이 오니 무심한 풀과 나무만 무성하구나.    國  破  山  河  在 城  春  草  木  深   당나라 시인 두보 (杜甫)...
금준미주

오늘 문득 춘향전의 금준미주 싯귀를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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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樽美酒 千人血   금동이의 아름답게 빚은 술은 수많은 국민들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   비싼 그릇의  비싼 음식은 수많은 국민들의 고혈이구나 燭淚落時 民淚落   휘황한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국민의 눈물 또한 떨어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광란의 시대에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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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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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9월 16일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가 외롭게 살던 이 세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녀는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일세를...
edvard munch

불안한 심리 표현의 거장 뭉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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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겨울이 길고 여름은 짧다. 이른바 북유럽 날씨라서 농사가 잘 되지 못한다. 지금 노르웨이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나라이지만, 석유가 쏟아져 나오기 전에 노르웨이는 아주...
simone martini annunciation 수태고지

왜 저한테 그러세요 – 마르티니의 “수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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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 (Simone Martini)의  “ 수태고지 (Annunciation)”는 중세 서양 미술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305 cm × 265 cm 정도의 거대한 크기로...
L'Absinthe

냉정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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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상파 화가 드가 (Degas) 가 그린 그림(L'Absinthe, 1876, oil on canvas, by Edgar Degas)에는 19세기 프랑스의 공장 직공들이 보입니다. 휴일도 없이 죽도록 일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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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労党粛清の歴史的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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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年後半になると、韓国戦争の初期に勢いに乗っていた北朝鮮軍が連戦連敗し、北朝鮮政権が危機に追い込まれると、金日成は敗戦の責任を朴憲永をはじめとする南労党側に転嫁した。 同年11月7日、ソ連大使館で金日成は朴憲永に「あなたが言ったパルチザンはどこへ行ったのか? 戦争が始まれば南朝鮮で民が皆起きると言ったが、どこに行ったのか? 昨年4月、私たちが一緒にモスクワに行ってスターリン大元帥に会った時、あなたの口で何と言ったか? 北朝鮮の人民軍が散歩するような気分でソウルまで押し下げると、南労党の地下党員数百万人が暴動を起こし、韓国を飲み込むのは朝飯前だと報告したのではないか」と叫んだという。 実際、解放空間でなんと百万党員を誇った南労党は、いざ韓国戦争中に韓国で一度の反乱や民衆暴動さえ起こ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 南労党は解放政局で数多くの労働争議とストライキを起こし、韓国経済に途方もない打撃を与え、1948年には済州道と麗水順天地域で武装反乱を起こしたり武力闘争を導いた。 南労党勢力は労組を基盤に社会の各部分に強力な組織を構築し、さらに警察と軍隊にも浸透して相当な組織を維持していた。 しかし、そのように勢いづいた南労党は、いざ彼らが実力を見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韓国戦争中にはあまりにも存在感を見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もし南労党の残党が大韓民国の軍隊と労働界をはじめとする社会全体に暗躍していたとすれば、それで彼らが韓国内部でテロと裏切り行為をしたとすれば、おそらく戦争初期の危機に陥った韓国政府は釜山の橋頭堡さえまともに守れなかっただろう。 それなら、解放空間であれほど多かった南労党党員と同調者たちはどこへ行ったというのか? 戦争中に南労党の暴動がなかった理由は何だろうか? 最も合理的な説明は、建国後、韓国で強力に展開された共産党粛清が効果的だったということだ。 本当に韓国戦争の間、韓国で左翼の反乱やサボタージュがなかったことが、早くから韓国政府が社会全体で左翼粛清を強力に推し進めたおかげだろうか? もしそうなら、戦前に国軍内で共産党探し作業を指揮し、残忍な左翼粛清で悪名を残した多くの人物に対して、今は再評価が必要かもしれ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