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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탈을 썼던 차우셰스쿠의 최후

차우셰스쿠 처형장면
차우셰스쿠 처형장면

1989년 12월 15일 루마니아의 조그만 도시 “티미소아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별 것아닌 것 같아 보였던 이 날의 시위는 불과 며칠 만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Nicolae Ceauşescu)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전국적 민란으로 확대되었다.

차우셰스쿠는 열렬한 김일성 지지자였으며 그의 루마니아는 북한 정권의 굳건한 동맹이었다. 철옹성 같던 차우셰스쿠 독재는 영원할 것으로 보였지만, 12월 15일에 시작된 시위가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지게 되었다. 당황한 차우셰스쿠는 군대에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라고 명령하였지만, 시민들은 시체 더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위기를 느낀 차우셰스쿠 부부는 헬리콥터를 타고 허겁지겁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잡혀 12월 25일 총살되었다. 그와 함께 지난 1965년 이래 루마니아를 억누른 공산 독재도 끝장났다.

생전에 차우셰스쿠는 간교한 마케팅과 위장 전술에 능한 자였다. 그는 독재를 위해 국민들의 세뇌가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철저히 언론을 통제하고 모든 정보를 왜곡했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처럼 그도 국민들이 스스로 “지상의 천국”에 살고 있다고 믿게 했다. 그는 줄곧 루마니아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루마니아에 대한 비판은 모두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이 악랄한 차우셰스쿠 정권은 진보적 가치를 내세워 사실상 자기 가족과 수하들의 이권을 챙겼다. 입법부와 사법부마저 그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 그의 만행을 견제할 것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시간이 가면서 나라는 점점 망해가도 차우셰스쿠 일당은 더욱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그렇게 거칠고 잔인한 자에게 나라를 맡긴 죄로 25년 동안이나 세계와 단절된 채 빈곤하게 살아야 했다.

하지만 1989년이 되자 마침내 그가 부르짖던 진보적 가치와 그 모순에 신물이 난 루마니아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차우셰스쿠 일가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아부와 충성의 견고한 성채도 분노에 찬 군중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차우셰스쿠 일가는 그 많은 재산을 두고 황급히 저 세상으로 떠나야 했다.

총살당한 차우세스쿠 부부의 비극적인 최후는 잔인한 범죄자에게는 늦었지만 합당한 말로였다. 그는 입으로는 진보를 부르짖으면서도 사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았던 악당에 지나지 않았다. 루마니아는 이제 길고 긴 악몽에서 깨어나 서서히 회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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