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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의 처형

사담 후세인 처형
사담 후세인 처형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씨는 이라크 뿐만이 아니라 중동 전체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잔인하고 과감했으며 국제적 감각이 있었다. 그는 쿠데타가 빈발하던 이라크에서 1979년 집권 이후 빠른 속도로 정권을 안정화 시키고, 이라크를 중동의 강자로 변모시켰다.

그는 이슬람 과격파가 정권을 잡은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서구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란과의 전쟁 중에 이라크 군은 국제법상 금지된 독가스를 사용하기도 하고 양민을 학살하기도 했지만, 서구 언론과 정부들은 이를 모른 척 해주었다. 그 당시 그의 정부는 과격 이슬람 주의를 주변 국가에 퍼뜨리려는 이란의 혁명 정부에 맞서는 믿음직한 방패였다.

1990년에 그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미국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에 근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현상 유지를 바라는 미국은 무력으로 개입해서 걸프전이 일어났고, 이라크는 눈물을 삼키며 쿠웨이트로부터 퇴각해야 했다.

걸프 전쟁의 패전에도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 정권은 9.11 테러 이후 부쩍 고양된 애국심 풍조를 이용해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때 미국의 구실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 (WMD)”를 숨겨 놓고 있으며, 이런 무기들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WMD는 사실 없었다. 그럼에도 막상 미군이 침공하자 후세인 정권이 자랑하던 정예 부대 “공화국 수비대”는 예상과 달리 종이장처럼 무너지고, 이라크 군은 곧 궤멸되었다.

미군 침공 이후 한 달도 안돼, 이라크는 미국의 점령 상태에 놓였고 모든 사람의 관심은 사담 후세인 씨가 어디에 있는지에 쏠렸다. 후세인씨의 행방은 묘연했지만 4월이 되자 중동의 투사이자 이슬람의 영웅이라던 그가 시골의 땅굴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체포되었다. 그가 만약 그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땅굴에서 끌려 나오지 않고, 시리아나 러시아로 망명해서 화려한 선전전을 펼쳤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후세인 씨는 미군에게 체포된 이후 철저히 격리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의 죄목은 “인도에 반한 죄”였다. 갑자기 서구 언론들은 그의 정권이 저지른 학살을 먼 옛날 일까지 소급해서 파헤쳤다. 그의 재판은 2004년 6월에 시작했는데, 2006년 11월 5일에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후세인 씨의 마지막 항고도 기각되자 미군은 신속하게 그의 형을 집행했다.

사담 후세인씨는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불과 두 달 뒤인 2006년 12월 30일 이라크의 군부대 안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시신은 매장되었지만, 곧 누군가에게 도난당했다. 한 때 중동과 이슬람의 수호자라고 불렸던 사담 후세인 씨는 이렇게 사라졌다. 독재자는 제거되었지만 그 이후 이라크는 끝을 모르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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