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2월 26일 일본 육군의 청년 장교들이 이끄는 병력이 느닷없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른바 “2.26”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집을 습격해서 사이토 마코토 (내 대신), 다카하시 코레키오 (대장 대신) 등 각료들을 살해했다. 쿠데타 군은 썩어 빠진 중신들이 나라를 말아 먹는다고 생각하고, 이런 부패 집단 대신 일왕이 직접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북 지역 출신이 중심이 된 쿠데타 군은 당시 일본 정치 계의 부패와 무능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꾼들이 판치던 일본 정계는 국가나 국민 보다 개인과 파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집권 세력과 결탁한 군부 지도층은 고가의 군사 정비를 사오는 데만 혈안이었는데, 이 이유는 거액의 커미션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는 세계적인 불황으로 일본도 큰 고통을 받을 때였다. 파국으로 치닫는 경제 상황 속에서 일본 국민들의 빈곤 문제는 더욱 심각해 졌다. 이를 지켜보던 청년 장교들은 점점 정치 세력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이 들은 당시의 모든 문제가 부패한 민간 지도층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봉기하여 구악을 일소하고 일왕을 옹립해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일을 꾸몄다.
하지만 당시 일왕 히로히토는 그 장교들이 생각하는 그런 리더가 아니었다. 히로히토는 부패한 민간 지도층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부패 집단의 중심 인물이었다. 자기의 지지 세력들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은 히로히토는 즉시 토벌령을 내렸다. 그러자 삽시간에 전세가 명확해졌다. 초반에 기세등등하던 쿠데타 군은 역적이 되었고 수세에 몰렸다. 마침내 주모자들은 체포되어 모두 가차없이 처형되었다.
기타 잇키 (北一輝)를 비롯해서 멍청했던 쿠데타 주모자들은 당시 일본 체계가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악의 무리라는 것을 몰랐다. 말하자면 그들이 믿었던 히로히토야 말로 당시 체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자였다. 게다가 쿠데타 군이 내세운 민간에 대한 군부 우위 개념이야 말로 위험한 사상이었다. 나치 독일이나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조차 군부 독재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일본은 이후 여러 곡절을 거쳐 군부 독재의 길로 들어선다.
당시 일본에서 이른바 통제파 (統制派)나 민간 정부 지지 세력이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군부 독재가 문민 독재보다 더 나은 체제였을까? 나중에 일본 군부가 정권을 잡자, 그들의 터무니 없는 부패와 무능이 곧 드러났다. 무식하고 공격적인 군부 지도자들은 마침내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린다. 똑 같이 썩었지만 그래도 민간인들은 그렇게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쿠데타를 주도한 자들은 애국애족의 일을 한 다고 생각했겠지만 원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