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장 중에 우키타 히데이에 (宇喜多秀家) 란 자가 있다. 이 자는 일본을 호령하던 히데요시 (豊臣秀吉)의 양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 벼락 출세를 해서, 임진왜란 때는 제8군 총대장 노릇까지 했다.
하지만 20살짜리 금수저가 겁없이 지휘하기에 실제 전투는 너무 버거웠고 조선군은 너무 강했다. 그가 이끄는 일본군은 행주대첩에서 권율 장군에게 대패했고, 우키타도 중상을 입어 전쟁터에서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는 어쨌든 살아 일본에 돌아 갔으나, 히데요시 사후 벌어진 내란에서 패배하여 귀양지에서 남은 여생 50년을 보내다 죽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유언시는 이렇다
み菩薩の種を植えけんこの寺へ みどりの松の一あらぬ限りは
(보살이란 종자를 심을까 이 절에, 푸른 소나무 하나 없을 밖에는)
이 자는 임진 왜란 때 수 많은 조선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한 악당인데,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는, 자기의 죄를 누우치기는 커녕 남의 말을 하듯 보살 타령을 하고 갔다. 그러고 보면 악인들은 마지막까지 뉘우치기는커녕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종자인 모양이다.
한동훈 장관이 취임한 이후, 그동안 해바라기처럼 권력을 따라 돌던 일부 검찰 간부들이 꽃보직에서 물러나 한직으로 내쳐지고 있다. 이 들이 퇴임사에서 내뱉는 “정의” “생각의 다름을 존중” “역지사지”와 같은 말을 들으면, 어쩐지 이런 말들이 너무나 허망하게 들린다. 그런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런 말을 들으니 마치 5공화국 때 경찰서앞에 걸려있던 “정의사회 구현”을 보듯이, 속이 불편하다. 그 들이 검찰 조직과 국가 권력을 자기 주머니 속의 찰떡처럼 주무르며 법의 원칙과 정신을 사정없이 모독했던 때가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생의 마지막에 보살을 입에 담았지만 그는 임진왜란 중 그는 악귀였으므로, 그 벌을 받아 죽어서도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가 아름다운 말로 자신을 속이고, 또 역사를 속일 수는 있지만, 틀림없이 천벌은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대자대비한 부처님도 그처럼 기억력 없는 악귀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우키타가 부디 억년의 고행을 다한 뒤에는 이 땅의 축생으로라도 태어나, 생전에 지은 큰 죄를 조금이나마 속죄하기를 기대한다.
파렴치한 우키타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