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8월 18일 이란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모하메드 모사데크 총리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로써 명목상 군주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Mohammad Reza Pahlavi) 왕이 실권을 다시 찾았다.
사실 이 쿠데타는 미국의 중앙정보국 (CIA)가 꾸민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모사데크 정권이 지나치게 아랍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소련측에 접근하였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서는 이란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기를 기대했었다고 한다.
정권을 잡은 팔레비 왕은 미국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백색 혁명 (White Revolution)”이란 이름의 이란의 서구화를 적극 추진했다. 팔레비 왕가의 서구화 정책은, 곧 이란을 지역내 최강의 강국으로 만들었고, 서방의 중요한 동맹국으로 이란을 우뚝 서게 만들었다. 동시에 팔레비 왕은 “샤한샤 (왕중왕)”으로 불리며 최고의 권력을 뽐내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란내에서 급격한 서구화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빈부 차이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그러자 팔레비 정권은 비밀 경찰제도를 도입하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가차없는 탄압을 가했다.
팔레비 정권아래에서 이란은 어느 면에서나 지역의 강국이 되었고 선진국의 문턱에 까지 들어섰다. 서구에서는 경제적 풍요와 선진화로 인해 이란 국민들이 과격한 짓을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란 국민들은 서구의 이성적인 국민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경제적 풍요보다 종교적 구속을 선택했다.
팔레비 정권의 탄압을 피해 외국에 망명했던 호메이니를 비롯한 과격 이슬람 지도자들은 먼 곳에서 이란의 반정부 운동을 지도했다. 가혹한 탄압에도 움직임을 이어가던 반정부 운동은 1970년대 말이 되자 급격히 강해졌다. 특히 1978년부터 부쩍 힘을 얻게 된 반정부 운동은 마침내 1979년에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퍼졌다.
결국 팔레비 왕과 그 가족은 1979년 1월 17일 망명길에 올랐고 다시는 이란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란에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서고, 그 이후 이란은 1970년대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소수의 선동가들과 과격 분자들에게 속고, 또 과격 분자들이 소리를 지를 때, 침묵한 멍청한 다수의 탓인 것을.
이란 팔레비 정권의 시작과 끝
이란 팔레비 정권의 시작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