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대통령 닉슨의 사임

흙수저 대통령 닉슨의 사임
흙수저 대통령 닉슨의 사임
1974년 8월 9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씨가 사임했다. 지금도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이미지는 교활한 정치꾼, 거짓말장이 (lier), 범죄자 (crook)로 매우 나쁘다. 그는 미국 정치계 최대의 스캔들이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74년 8월 9일 사임을 발표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비행기 트랩에서 그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손을 한 번 휘젓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있다. 흙수저로 태어나 평생을 정치에 몸담아온 그는 그렇게 워싱턴과 정치를 영원히 떠났다. 원래 미국 대통령직은 동부 명문가 출신이며 하버드 나 예일대 출신이 늘 돌아가면서 한다. 하지만 그는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시골에서 어렵게 자라서 자수 성가형으로 성장해왔다. 닉슨은 5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우등생이었던 닉슨은 하버드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근처 휘티어 칼리지에 입학한다. 그는 듀크대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 변호사가 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  그는 학력으로 인한 콤플렉스를 줄곳 겪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해군에서 군복무를 마친 닉슨은 1946년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고 이후 상원의원에 이어 1952년 아이젠하워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와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가난과 비극은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어려서 터 오직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했으므로 그의 생존 스킬과 전투력은 일찍부터 길러졌을 것이다. 그가 현직 부통령 자격으로 대선에 출마한 1960년 선거에서 그는 동부의 부잣집 도련님 케네디와 싸웠지만 막강한 자금을 살포하는 케네디 가문에 당하지 못했다. 그는 와신 상담하여 8년 뒤인 1968년에야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73년에 워터 게이트 사건 (Watergate scandal)이 터지자 원래 워싱턴에 뿌리가 없던 그의 정치 세력은 급속히 무너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적 언론과 미디어들이 총공격을 하자 미국의 여론도 급속히 나빠졌다. 완전히 백악관에 고립된 닉슨에게 원군은 없었고 그의 정치적 동지들도 대부분 그를 배신했다. 냉전 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중간에 그만둔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국의 대통령이 법원이나 의회에 굴복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탄핵과 기소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그의 후임인 포드 대통령은 그를 법적으로 사면하였지만 그를 정치적으로 구해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렇게 잊혀갔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작은 도시 요바린다에는 그의 도서관이 있다.   흙수저 대통령 닉슨의 사임 흙수저 대통령 닉슨의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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