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에 낙동강에서 일어난 기적

1950년 8월에 낙동강에서 일어난 기적
1950년 8월에 낙동강에서 일어난 기적

1950년 8월 26일,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다. 북한의 남침이 개시된 지 벌써 2개월, 대한민국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동쪽 귀퉁이에 위태롭게 있었고, 밀어닥치는 북한군의 공세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부 수립후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한국 전쟁은 허약했던 신생 독립국가를 근본부터 흔들었다. 처음겪는 전쟁으로 모두들 얼이 빠진 상태였는데, 국군은 힘겹게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고 있었다. 특히 8월 중순부터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다부동 전투가 한창이었다. 이 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제 1사단의 1만여 병력은 3만이 넘는 북한군 3개 사단의 공세를 꺾는데 성공했다. 국군을 짓누르던 패배주의와 좌절, 울분의 더미 속에서 이루어낸 기적같은 승리였다. (‘다부동 전투’ 그곳, 백선엽 동상 선다)

북한이 오합지졸이라고 비웃던 국군은 다부동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북한군의 거센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았다. 초초해진 북한 지도부는 낙동강까지 내려와 전선의 지휘관들을 다그쳤다. 북한은 이 전투에서 정규군 뿐만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에서 강제로 끌고 간 의용병들까지 모두 긁어모아 인해전술로 몰아붙였다. 어떻게 해서든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전에 승부를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군의 총공세는 좀처럼 국군의 방어선을 뚫을 수가 없었고, 여러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8월 공세는 결국 실패로 돌아 갔다.

개전이후 패전에 후퇴를 거듭하여 사기가 바닥을 치던 국군에게 다부동 전투를 비롯한 낙동강 방어전의 승리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쁜 소식이었다. 운명의 1950년 8월을 기점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한숨을 돌리고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8월을 지나면서 낙동강 방어선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유엔군은 정예부대를 전선에 투입하지 않고 후방에서 적의 배후를 기습하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할 수 있었다.

만약 낙동강 방어선의 어딘 가가 8월에 뚫렸다면, 북한군은 물밀듯이 부산으로 진격했을 것이고, 미리 침투해서 부산에서 암약하던 제5열들이 사회 혼란을 위해 일제히 사보타지와 테러를 벌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혼란속에 제주도나 하와이  어딘가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1950년 8월에 국군이 거둔 기적의 승리는 이 나라를 살린 셈이다. 다시 8월을 보내며, 나라를 지키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스러져 간 국군 병사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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