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처럼 실패로 끝날 중국의 사상 통제

베를린 장벽처럼 실패로 끝날 중국의 사상 통제
베를린 장벽처럼 실패로 끝날 중국의 사상 통제

1961년 8월 31일, 소련군과 동독 정부는 갑자기 베를린 시의 중간에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높아져 가는 벽을 보면서  흔히 있는 해프닝으로 생각했지만, 곧 이 벽이 공산권과 서방 세계를 단절하는 장벽이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동독 주민들은 줄을 지어 필사적으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동독 정부는 주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높고 튼튼한 장벽을 세우고 무장한 병력을 배치해서 탈출 시도자들을 마구 사살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1961년 부터 1989년까지 약 10,000 여 명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 했는데, 이 중에 절반 정도가 자유 진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탈출에 실패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감옥에 가거나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공산권이 얼마나 자유 사상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독일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에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로써 베를린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상징이 되었다. 1963년 6월 26일 베를린을 방문했던 미국 대통령 케네디 씨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서베를린의 시민들에게 외쳤다. ” 이천 년 전에 ‘나는 로마의 시민이다’라는 말이 자랑스러운 말이었다면, 지금 지유 세계에서는 ‘나는 베를린의 시민이다 (Ich bin ein Berliner) ‘라는 말이 자랑스러운 말입니다…. 저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외칩니다!”

이 당시 공산주의의 기세는 세계 곳곳에서 거세게 타올랐고, 마치 세계 적화의 그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았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의 공산 정권들은 자국의 국민들을 서방으로부터 분리시킨 후, 철저한 세뇌와 사상 교육을 통해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그들이 새롭게 창조될 것을 확신했다.

그들의 전체주의 체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세등등하게 서방을 위협했지만, 압제와 공포로 국민을 통치했던 소련과 동구권은 마침내 1989년쯤 순식간에 무너졌다. 폐쇄적 공산 체제는 말하자면 “내부 모순”이 쌓여 자체적으로 붕괴한 것이다. “공산주의적 인간형” 실험은 실패했다. 철저히 세뇌되었다고 알려졌던 동독 국민들은 기회가 주어지자 서슴지않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택했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죽의 장막”을 치고 사상과 통신을 철저히 검열하고 있다. 중국에는 페이스북이나 X (트위터), 구글과 같이 보편적으로 세상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이 금지되어 있다. 중국의 인민들은 세심한 정부의 정책에 의해 “외부의 해악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사육되고 있다.

겉으로 보아 철저히 세뇌된 중국 인민들은 마치 정부의 괴뢰처럼 지시에 순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 정부는 자기들의 사상 통제가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아직 그렇게 생각하기는 이르다. 앞으로 중국 경제가 휘청이고 굶주리고 성난 인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진핑과 공산당 무리를 저주할 때, 중국이 자랑하는 지금의 철권 체제가 얼마나 종이장처럼 허무한 것인지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1960년대의 베를린 장벽은 결국 실패했다. 지금 중국 정부가 강제하는 시대착오적인 사상 통제가 2020년대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하긴 그토록 어리석으니 21세기에도 공산주의를 따르고 있겠지만. (THE 100 DAYS: Fall of the Berlin Wall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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