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심벌에서 개혁가로 – 라켈 웰치 스토리

섹스 심벌에서 개혁가로 - 라켈 웰치 스토리
섹스 심벌에서 개혁가로 - 라켈 웰치 스토리

요즘 세대에게 라켈 웰치 (Raquel Welch)는 낯설고 이상한 이름이겠지만, 그녀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배우였다. 웰치는 시카고에서 볼리비아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배우지망생들이 그랬듯이 웰치도 온갖 고생을 하면서 배우의 꿈을 조금씩 키워갔다.

늘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맴돌던 그녀의 커리어는 1966년 “공룡 백만 년 (One Million Years B.C.)”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 영화는 역사적 고증 따위는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영화의 배경이 원시 시대라는 이유로 출연한 여배우들이 파격적인 털옷 비키니를 입고 나오는 영화였다. 지금 보면 유치하고 황당한 스토리에 조악한 특수 효과가 어색한 영화였다. 게다가 웰치는 이 영화에서 겨우 세 줄의 대사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세계적으로 대박이 났고 이 영화의 성공으로 웰치는  삽시간에 1960년대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로 만들어졌다.

웰치는 2023년 2월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연극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웰치는 섹스 심벌로 얻은 인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면에서 개척자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1969년 영화 “100정의 라이플 (100 Rifles)”에서 보여준 흑인 배우 짐 브라운 (Jim Brown)과의 노골적인 섹스 신으로 엄청난 논란을 만들었다. 이 때는 인종간 사랑이 절대적 금기였던 1960년대였다.

또 웰치는 1970년에는 “마이라 브레킨리지 (Myra Breckinridge)”에서 트랜스 젠더 역할을 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트랜스 젠더”란 말 자체가 분노와 경멸을 만들던 시대였다. 1982년에는 할리우드의 거물 MG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겼다. “일개” 여배우가 할리우드를 주무르던 스튜디오를 상대로 소송을 한 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웠던 시기였다. 그 이후, 그녀는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왕따가 되었다.

이처럼 웰치는 여러 가지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웰치는 1966년의 영화 속 과감한 자세 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하다. “공룡 백만년”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그녀의 이미지는 1994년 영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에서 주인공이 탈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켈 웰치는 1940년 9월 5일에 태어났다. (Raquel Welch: US actress and model dies at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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